💦 잉잉이님에게 2023년은 어떤 해였나요?

2023. 12. 21.

💦 나에게 2023년은 어떤 해였나요?

잉잉이님, 연말이에요. 믿겨지시나요?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2023년의 가장자리를 까치발로 딛고 서서 적는 편지랍니다. 아 혹시, 아직 1월이 되지 않았는데 잉잉레터가 도착해서 놀라셨나요? 연말호를 꼭 보내드리고 싶었거든요. 선물을 준비했으니 바쁘시겠지만 너른 마음으로 읽어주셔요. 이모(emo)는 드리고 싶은 게 많답니다~ 잉잉이님이 평온했으면 하고요😌 오늘도 잉잉레터를 펴주셔서 감사드려요.

*잉잉레터를 처음 열어보신 분들을 위한 가이드📘 잉잉레터는 에디터와 구독자가 함께 만드는 뉴스레터예요. 매주 에디터가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감정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구독자들의 답변을 다음 호의 '레츠 톡 어바웃 이모션' 코너에서 나눕니다. 지난 호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편지를 들고 있는 이모(emo)를 눌러주세요!

잉잉이A

하고싶은것도 해야할 것도 많은데, 한걸음씩 백만보를 걸어서 다 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니 벌써부터 피곤해져요. 과정을 즐겨야한다는걸 더욱 깨닫게되는데 시작도 전에 지치는 기분이에요. 힝힝. 사는게 피곤해요

잉잉이B

특히 sns를 할 때 마다 늘 피곤함을 느껴요 타인들 게시글 보면 행복한 모습 보여주기식인걸 알면서도 난 안행복한데 그래도 행복한 모습처럼 보일려고 꾸미는 제 자신이 피곤해요 이게 다 눈치보는거겠죠 .. sns는 유용할 땐 유용하지만 80%는 피곤하고 비교대상을 만들게되어요 저는 그래서 sns를 할 때 피곤함을 느껴요 !

잉잉이C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순간으로 이겨내지지 않을 때요.. 아무리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면 괜찮은데 다음이 보이지 않고 막막해지면 그간 미뤄왔던 피곤함이 몰려오는 것 같아요 긍정적 사고로 간신히 막아뒀던 무형의 무언가가 무너진 느낌이라 그 날은 정말 피곤하고 우울해져요 사실은 감정을 잘 흘려보냈던 게 아니라 쌓아두고 있었음을 여실히 느끼게 되는 것 같고요

잉잉이D

늘. Always. 어렸을 때부터 30대가 된 지금까지 예민하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조차도 저를 이해하지 못했고 가족들 사이에서 저는 늘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네가 이상한 거다. 다른 사람들은 그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행히 저와 같은 고민을 가진 소중한 친구가 한 명 있어요. 그 친구도 저와 같은 고민을 갖고 있고, 인터넷 세상에서 만난 저와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조금의 위안을 받곤 합니다. 가족에게는 속마음을 편히 보여주지 못하거든요. 하지만 마음에 맞는 친구가 있어도 어쨌든 그 역시 남이기 때문에,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가족이 나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라는 평생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항상 방에 들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곤 합니다. 별 거 아니라고 하는 것들이 저에게는 별 거에요. 모든 일이 너무 크게 느껴져요. 나이가 들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무던해질뿐 똑같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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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의 2023년은요

진부한 표현이지만 시간은 쏜살과 같다는 옛말이 자꾸 생각나요. 화살깃에 매달린 저 자신을 상상해 봅니다. 그 화살은 오래전, 제가 태어남과 동시에 발사되었고요. 어찌나 빠르고 거침이 없는지 깃을 간신히 붙잡고 봄-여름-가을-겨울 바람 부다다다 맞다 보니 지금의 제가 되어 있네요.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창문으로 거센 역풍을 맞아본 일이 있으실 거예요. 시간의 흐름이 제게는 그렇게 체감되어요. 정신없었지요. 네, 정말로, 시간을 훔치는 도둑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그래서 저의 2023년은 어땠느냐면요. 제가 한껏 투명해지는 한 해였던 것 같아요. 여기서 '투명'에는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는데요. 저는 맛있는 반찬을 나중에 먹는 편이니 부정적 의미부터 풀어볼게요.

2023년은 제게 '사무실과 길 위에서 보낸 한 해'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무려 왕복 네 시간의 통근! 약속을 잡거나 야근을 하지 않더라도 저에게 퇴근 이후의 생활은 없었어요. 칼같이 퇴근하더라도 집에 와 늦은 저녁을 챙겨 먹고 씻으면 9시에서 10시. 수면 시간을 확보하고 다음 날 출근 시간을 맞추려면 억울하고 아쉬워도 불을 끄고 눕는 수밖에요. 그렇게 출근-일-퇴근으로 삶이 점철되다 보니 조금씩 제가 투명해지는 기분이 들더랍니다. 앗, 입사하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더라? 하고요. 그래도 입사 초기에는 사회생활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 달리기와 도서관을 붙잡고 바지런히도 살았는데요. 먼저 퇴사하신 팀장님 말마따나 한계는 어느 날 '쿵' 하고 한 번에 찾아오더랍니다. 레터에도 이따금 적었던 것 같은데 저는 뭉툭해져가는 느낌, 나를 잃어가는 느낌, 제가 투명해져가는 느낌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어요. 2024년은 어떻게든 환경을 마련해서 다시 저를 벼리는 시간을 가지려구요.

이제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생애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똑똑한 사람, 재밌는 사람, 이상한 사람, 다정한 사람, 탁월한 사람.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작디작은 저의 우물은 와장창!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후유증은 컸어요. 마음은 위축되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거든요. 한편으론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구나' 혹은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구나'하는 겸허함을 느끼게 해주어서 고마운 것도 있어요. 입사 전에 저는 한 마리 고고한 학이었는데, 지금은 비둘기가 되었달까요? (그나마 고운 흰색 털을 가진 비둘기?) 자기 사유에 한계를 정해 두는 것은 건강한 일이라고 배웠어요. 이제 스스로를 좀먹을 만큼 머리를 굴리고 채찍질하는 일은 그만두려구요. 있는 척, 신비주의도 다 갖다 버리구요. 지금은 그저 느끼는 대로, 감정과 욕구에 충실하게, 그렇게 순간을 살고 싶다는 생각만 남았어요. 투명하게 살고 싶다고.

자, 다시 진부한 이야기인데요. 시간이라는 화살깃에 매달린 우리가 역풍을 맞으면서도 매무새를 다듬고, 추억을 향유하며, 더 나은 내일을 그릴 수 있는 놀라운 방법을 소개하고자 해요. 바로 회고와 기록입니다! (하하!) 너무 뻔했나요? 그래도 인생의 하이라이트에 느꼈던 감정을 미약하게나마 되새김질할 수 있다니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요✨ 잉잉이님에게 2023년은 어떤 해였는지 이야기를 나눠주시면, 추첨을 통해 회고를 도와줄 '연말 정산 엽서'를 보내드릴게요. 2023년, 잉잉레터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 전하며 이만 맺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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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 잉 선정 올해의 콘텐츠

1. [에스콰이어] 배우 한소희 인터뷰 - 본문을 보면 한소희님은 불안을 치우는 방법이 ‘가만히 있기’라고 대답해요. 이 인터뷰를 보고 오랜만에 찜질방에 찾아가 모래시계를 뒤집어놓고 떨어지는 모래를 보며 가만히 있는 훈련을 해봤어요.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습니다😅

2. 마츠바라 미키 <Stay with me> -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알게 된 노래예요. 한번 듣고 푹 빠져서 자주 찾아 들어요. 얼마 전 다녀온 펍에서 신청곡을 받길래 이 노래를 신청했는데요. 유명한 곡이라 가게에 있는 손님들과 사장님이 다 함께 흥얼거렸던 기억이 나요. 가사는 슬프지만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랍니다.

3. [서울체크인] 효리X옥섭X교환 힐링 토크 - 영상을 보면 이옥섭 감독이 말해요. 인생에서 마주치는 미운 사람들을 내가 만들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다 사랑하게 된다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됐어요. 특히 우리 엄마를요.

4. 미야자키 하야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을 지긋지긋한 생물, 뿌리 파리의 존재를 인정하는 계기가 된 영화예요. ...하지만 내년엔 식충 식물을 키워보려고요😇

5. 제시카 바움 <나는 왜 사랑할수록 불안해질까> - 나의 애착유형까진 알겠지만 그래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면 추천드려요.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돌보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주는 따뜻한 선생님 같은 책이에요.

6.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2 - 여성 댄스 크루들이 음악과 춤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 최선을 다해 맞서 싸우는 걸 보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어요. 감정을 발산하고 싶어도 현실에선 제약이 많아서 받는 스트레스를 날려준답니다.

7. 박완서, 이해인, 방혜자, 이인호 <대화> - 대담집이나 인터뷰집을 좋아해요. 글이 쉽고 친절하거든요. 마음이 헛헛해 일없이 중고 서점을 들렀다가 발견한 대담집이에요. 저자들을 저는 만난 적 없지만 책을 읽는 동안 함께 있는 기분, 그들에게 돌봄을 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8. 김창완 <나는 지구인이다> - 연약해지는 날이 있잖아요. 틀어 놓고 가만 듣고 있으면 트랙 하나하나가 마음을 쓸어내려요. 속을 게워낼 때 뒤에서 등을 두드려주는 누군가의 손처럼요. 기타도 목소리도 따뜻해 겨울에 듣기 좋은 앨범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