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잉이님은 최근에 울었던 날이 있나요?

2023. 4. 4.

💦 최근에 울었던 날이 있나요?

잉잉이님 안녕하세요, 진부하지만 오늘도 달라진 창밖 풍경으로 운을 띄웁니다. 성큼 찾아온 훈훈한 밤 공기와 만개한 벚꽃을 모른 척 할 수는 없겠더라구요. 작년엔 벚꽃이 피고 지는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올 봄엔 안양천에 가보자 제안해준 친구 덕에 저녁 무렵의 벚꽃도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직 길게 뻗은 벚나무 행렬을 따라 느긋하게 걸어보지 않으셨다면, 잠시 시간 내어 다녀오시기를 권해봅니다. 무섭도록 빠르게 흘러가는 2023년 가운데 뭐 하나는 붙잡은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구요. 계절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 지난 레터에서 구독자들이 나눠준 '세상이 무너져 내렸던 경험'을 공유하는 것으로 오늘의 잉잉레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잉잉이A

저는 부모님이 두분 다 맞벌이 하셔서 어렸을때부터 외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어요. 그래서 부모님보다 더 부모님처럼 느끼고 살았는데 몇년 전 외할아버지께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쎴어요. 그때 정말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잉잉이B

세상이 무너졌다고 하기엔 조금 가벼운 사건일지 모르지만.. 저는 학창시절에는 반장, 간부, 동아리 활동 등 눈에 띄는 활동을 즐겼어요. 집에서도 대소사를 챙기고, 중간 다리를 하는 존재였고, 회사에서도 실수하지 않는, 똑부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하면서 인정받았고요. 그러던 어느날 업무 진행 중 주춤하는 순간이 생겼어요. 회사의 상황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제 능력이 부족해서는 아닐까 하며 의기소침해졌어요. 그렇게 시간이 붕 뜨니까 갑자기 제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난 특별해' '난 잘해낼거야' '난 잘하고 있어'라고 다짐하며 자신감있던 모든 순간의 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어요.

잉잉이C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제 맘과 같지는 않다는 걸 느꼈을 때였어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힘내' '괜찮아' 의 뻔한 위로보다 더 따뜻한 말이 없을까 항상 고민하고 공감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스스로 제 노력이 있기에 이 관계가 유지된다고 착각했나봐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정작 제게 위로가 필요했을때는 제 곁에 아무도 없었어요. 따뜻한 말 한마디, 같이 보내는 시간.. 그정도를 원했던 건데 말이에요. 어렵게 제 마음을 글로 전달했을때 '다 그렇게 살아'라는 말에 오랜시간 공들여 쌓았던 제 마음들이 한번에 무너졌어요. 제 맘같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처받은 마음에 친구들을 원망했었는데요. 돌이켜 생각하면 훗날 다시 똑같이 위로받을 생각에 그 순간순간 마음과 에너지를 다 쓴 제가 너무 바보같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렇게 애썼던 제 자신이 한심해서 더 마음이 무너졌어요.

잉잉이D

어느날 새벽 술도 못 마시는 엄마가 소주를 마시더라고요, 이따금 아빠와 사이가 안좋으시면 저에게 푸념을 늘어 놓곤 하시는데 그날은 한숨을 푹 푹 쉬시면서 소주 한 병을 비우셨어요. 웬 안하던 행동을 하시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날 아침 동생이 엄마가 연락이 안된다며, 이 쪽지를 남기고 사라졌다고 울면서, 자고 있는 저를 깨웠어요. 쪽지엔 유서와 같은 내용이 써 있었어요. 저희는 집 앞 편의점으로 가 cctv를 돌려보고 경찰에 신고하고, 엄마가 가셨을것 같은 동네 여기저기를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녔어요. 아직 겨울이 다 가지 않았어서 엄청 추웠거든요... 그 새벽에 술 마시고 수면제까지 드시고 어디 쓰러져 있으면... 살아계실까? 이렇게 가시면 안되는데...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한 두시간 후 산밑에서 쓰러져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는 경찰관의 연락을 받았고, 다행히 살아있다고... 의식은 없어서 바로 구급차가 싣고 갔다고 하셨어요. 응급실에서 엄마가 깨어나기까지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었어요. 그날이 제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날이었어요.

잉잉이E

저는요. 제 세상이 무너진 적이 있느냐고 제게 묻는다면요. 저는 '아직'이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제게 힘든 일이 없었다는 것은 아녜요. 너무나 힘든 일들이 그리고 너무나 힘든 날들이 있었고, 그 중 여러 가지 것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주변을 맴돌고 있어요. 그럼에도 누군가 다시, 제 세상이 무너진 적 있느냐고 묻는다면 역시나 대답은 '아니 아직' 이겠네요. 어찌 그럴 수 있냐 한다면, 아마도 그 덕은 제 주변에 있던 많은 존재들에게 돌아가겠죠. 세상이라는 탑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금이 가고, 휘청이던 많은 순간들에는 항상 그 탑을 다시 고칠 벽돌 한 장과 모래 한 줌을 얻었던 것 같아요. 언젠가 한 번은 사람에게서 얻을 때도 있고, 음악에서 얻을 때도 있고, 응원하는 연예인에게서, 좋아하는 게임에서, 따뜻한 밥 한끼에서, 차갑게 식힌 소주 한 잔에서도요. 그래서 제 세상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어요. 제가 힘든 일을 겪는 것과는 무관하게요! 그러니 실례인 줄 알면서도 한마디의 위로를 전하고 싶어요. 세상이 무너져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당신에게. 그대의 사정은 단 한 줄도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이런 말을 전하는 게 부끄러워질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아직 당신의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곧 당신에게도 벽돌 한 장과 모래 한 줌이 찾아 올 것이라고요."

잉잉이F

하나 밖에 없던 가족이 사라졌을때요. 제가 말도 못하던 어릴때 부모님은 이혼을 하고 쭉 저를 키워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 그 느낌은 아직도 쭉 저를 따라다닙니다. 저에게 할머니는 기준이 높고 무언가를 잘해도 칭찬 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늘 "내가 희생해서 너희들을 건사했는데 내가 불쌍하지 않냐 나는 희생자다", "내가 너를 낳지 말라고 했는데도 죽어도 살아보겠다며 결혼하더니 이꼴이 났다" 는 말들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아빠는 초등학교때 돌아가시고 엄마는 한번도 연락이 없었어요. 어차피 엄마에 대한 개념 자체도 없었어서 엄마가 없는건 상관 없었어요. 아빠가 돌아가셨을때는 너무 큰 충격이었고 나를 원망하며 키웠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는 더 큰 충격이었는지 아직도 제탓을 합니다. 내가 내 삶을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간병을 해야했다... 내가 별 것도 아닌 내 삶을 살자고 모든걸 망쳤다...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숨을 쉬는데 꿈 속에서 지내는 것 같았어요. 지금은 나아져서 웃기도 하고 미래도 생각하지만 그때는 몸통이 없는 채로 팔로 머리를 붙들고 다리를 끌며 살아가는 기분이었어요. 내 존재를 부정하며 나 때문에 삶이 망가졌다고 원망을 들어도 유일하게 날 포기하지 않은 존재가 없다니 가족이 이제 없구나 하는 공허함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소중한 것들이 남아있으니까 어떻게든 살아갈거에요. 힘든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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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고 싶을 땐 울어요

취미로 그림을 그린 지 일 년 반이 되어갑니다. 죽자사자 파고들던 때도 있었기에 더는 취미가 아니게 되었다가, 회사를 다니면서 다시 취미가 되고. 취미라는 단어에 게슈탈트 붕괴 현상이 오네요. Chwi-Me. 중국어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쩐지 고약한 냄새를 풍길 것 같기도 합니다(취두부 때문일까요?). 저는 평소 군더더기 없는 말과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Chwi-Me는 누가보아도 군더더기 아니냐구요? 맞습니다. 제가 쓰잘데기 없는 말을 늘어놓는 건, 멘탈이 좋지 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뜻이에요.

말머리에 그림 얘길 꺼냈지요. 그림에 진심이었던 만큼 그림에 대한 글도 많이 읽었어요. 뭇 화가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림을 그리면서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길 종종 접하게 됩니다. 근데 저는 그림을 그린 18개월 동안 그 이야기에 한 번도 공감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이따금 그림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낯선 방법으로 감정을 전달하고자 함이었지 저 자신을 위한 노력은 아니었거든요. 또 정작 깊은 감정에 빠져 있을 때에는 붓을 들지 않게 되더랍니다. 글로 한바탕 쏟아낸 후, 그것도 힘들면 한차례 속앓이를 하고 난 후 평온함이 찾아왔을 때 그림을 그리곤 했거든요.

어제는 그릴 기분이 아니었는데도 그림을 그려야 했습니다. 부탁을 받은 작업이었기 때문이지요. 퇴근 후 밤 늦은 시간, 덴마크 코펜하겐의 알록달록한 건물들을 캔버스 위에 옮기려 애를 썼어요. 상상력을 조금 가미하여, 건물 외벽에 달린 수많은 창문 중 하나를 열고 그 안에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 한 명을 그려보았습니다. 오른팔을 들어 저를 향해 손바닥을 활짝 펼쳐 보인 사람이었죠. 그가 입은 윗도리를 초록색으로 살금살금 칠하는데, 묘하게 그림이 저를 끌어당기기 시작했어요. 뭘까 이 오묘한 기분은. 어쩐지 따뜻한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느낌은 처음인데! 그러다 덜컥 눈물이 쏟아진 거예요.

아, 나 환대가 필요했구나.

인턴 생활 3개월 차. 회사를 다니다 보면 제 존재가 조금씩 옅어지는 기분이 듭니다. 불투명도 50%쯤의 투명인간이 된 느낌일까요? 동료들은 모두 노트북 속으로 빨려들어갈 듯 저마다의 업무에 몰두합니다. 그 가운데 홀로 평정심을 지키기 어려운 날이면 '누구라도 나를 좀 알아주었으면', '일이 아닌 일로 내게 말을 걸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지곤 했어요. 어제도 꼭 그런 날이었습니다. 조용히 출근하여, 조용히 그날의 할 일을 마치고, 조용히 회사를 빠져나와, 조용히 귀가하는, 끝까지 조용했던 하루.

그 끝에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사람을 그리고 있자니 그 손이 꼭 저를 향하는 것 같더랍니다. 분명 내가 방금 그려낸 손바닥인데 다른 사람의 것처럼 느껴지는 거 있죠? 그림을 그리면서 위로를 얻는다던 화가들의 말이 와닿았어요. 그림이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안개처럼 주변을 둥실둥실 떠다니던 정체 모를 감정들을 품을 수 있도록 도운 게 아니었을지. 감정들은 곧 제 안에서 뭉쳐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촉촉해졌고, 덕분에 저는 잠시 가습기처럼 포실포실 눈으로 물을 뿜어댔답니다. 여전히 고요했지만 내가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었던 밤이었어요.

오늘은 초심으로 돌아가 질문을 던져봅니다. 잉잉이님은 최근에 울었던 날이 있나요?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 혹은 울고 싶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어주세요. 마지막으로 운 게 언젠지 까마득해 기억나지 않아도, 아니면 반대로 매일같이 밤마다 베개를 적시고 있어도, 아무튼 우리 울고 싶을 때는 울자는 추신으로 오늘의 편지를 맺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