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친구가 저에게 말했어요. 요즘 일터에서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이 '나 뭐하려고 했더라?'라고. 박수를 치며 공감했지요. 저도 그렇거든요. 그건 아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아서, 머릿속에 들고 있는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걸 거라고 답을 주었어요. '나 뭐 하려고 했더라?' 그 생각은 퇴근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무슨무슨 메세지를 담아 글을 써야지- 하고 노트북을 펴면 번번이 태초의 질문으로 돌아왔어요. '나 무슨 말 하려고 했더라?'

저에게 있어 '좋은 책'은 읽다가 글이 쓰고 싶어져 덜컥 덮게 되는 그런 책이에요.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을 막 덮은 참이랍니다. 평소 체력 관리를 위해 주에 한 번은 달리기를 해요. 보통 8km를 뛰고 몸이 가볍다 싶으면 9km, 10km까지 뛰어봅니다. 그러다 보면 장거리 달리기가 꼭 삶의 축소판처럼 느껴지곤 했어요.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지 많은 작가들이 달리기와 삶을 엮어 글을 쓰더군요. <지지 않는다는 말>도 그래요. 밑줄 하나를 나눠볼게요.

달리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시작할 때 그렇지 않다면 끝날 때는 반드시 그렇다.

어릴 적 워터파크 유수풀에서 튜브를 놓쳐 죽을 뻔한 적이 있었어요.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저는 자꾸 가라앉았지요. 코스가 나눠지는 지점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양쪽에서 인공 파도가 밀려왔어요. 저는 수압에 짓눌려 물 밑에서 몇 바퀴를 굴렀어요. 그때 든 생각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물속에서도 이렇게 빨리 회전할 수 있구나. 또 하나는 이대로 나는 죽는 것일까. 수면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물이 저를 굴리는 힘이 더 강했거든요. 가녀렸고, 무력했어요. 임계를 느끼고 몸에 힘을 뺐습니다. 다행히 정신을 잃기 전에 소용돌이가 잠잠해졌어요. 그 날의 일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자리했지요.

그런데 지난 일주일 동안 일터에서 자꾸 그 일이 떠오르는 거 아니겠어요? 보이지도, 손에 닿지도 않는 몇 겹의 파도가 밀려와 저를 숨 쉴 수 없게 굴려댔어요. 이번에도 임계가 찾아와 힘을 놓으려고 할 즈음 주말이 찾아왔습니다. 다만 밀린 숨을 몰아쉬기에 이틀은 턱없이 짧았어요. 월요일에 연차를 쓰려다가 조금만 더 버텨보기로 마음을 고쳤습니다. 가장 급한 일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거든요. 대신 금요일에 연차를 쓰고 하루 재택 근무를 끼워서 다음 주는 수요일까지만 출근할 거예요. '3일만 견디자' 다음 주를 버티게 할 새로운 주문입니다.

여유가 없으면 사람이 박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다정한 언어를 쓰는 건 고도의 정신 작용을 요하는 일이더라구요. 코너에 몰려 있을 땐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기가 어려워요. 회사를 다니는 동안 제가 정말로 견딜 수 없었던 건 고객의 부정적 피드백도 성과에 대한 압박도 아니었어요. 태도가 무너진 나 자신을 지켜보는 일이었죠. 특히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 그 이틀은 차라리 야수에 가까웠습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었어요. 혼자 글을 써내면 되는 직무라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제의 달리기는 조금 절박했어요. 평정심을 돌려주세요, 종교는 없지만 신에게 바치는 45분짜리 기도였습니다. 한강과 달리 제가 사는 동네의 강변은 밤 중에 걷거나 뛰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날따라 유독 고요했지요. 세상에 혼자 남은 듯 뛰다 보면 여러 생각이 올라와요. 고통스러웠던 일, 좋았던 일, 다음 주에 맞이할 일. 달리기를 하면서 정신이 삼천포로 빠지면 몸이 정직하게 반응합니다. 특정 신체 부위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고 호흡이 가빠져요. 그러니 몇 번이고 물에 빠진 정신을 건져내야 해요. 지금 움직이는 내 몸과 지금 움직이는 풍경에 집중! 저에게 달리기는 근육을 쓰고 파이팅을 외치는 스포츠가 아니라, 불필요한 생각과 힘을 빼는 명상에 가깝습니다.

우주의 엔트로피는 항시 증가하므로 사람이 사는 일은 필연적으로 질서에서 혼돈으로 나아간다고 해요. 먹고 자고 싸고. 의식적으로 힘을 들여 뒷처리를 않으면 한 사람의 주변은 금방 난장판이 됩니다. 사는 게 녹록치 않으면 꼭 자문하게 되어요. 산다는 건 뭘까? 한편으론 사는 게 꼭 '무엇'이어야 하나, 그런 마음도 들어요. 어쩌면 사는 건 그냥 사는 것일지도 몰라요. 다만 '어떻게'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몸과 마음을 단련하여 내 주변의 어지러움을 정돈하고, 다정함을 나누고, 타인에게 이로운 존재가 되어 나 스스로가 좋아지는 소소한 시간을 조금씩 쌓아가고 싶다고. 아, 이거면 충분하겠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관람하지 않으셨다면 제가 먼저 질문을 던져볼게요. 잉잉이님은 앞으로의 인생, 어떻게 살고 싶으신가요? 아래 잉티클에 그간 제 삶에 나침반이 되어주었던 말과 문장들을 정리해 보았어요. 잉잉이님의 '어떻게'가 조금 더 선명해지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오늘의 편지 이만 맺어봅니다.